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작은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평범한 사장입니다.
매일 하루하루 치열하게 장사를 하고 사업을 꾸려가다 보면, 가끔은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내 사업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이 찾아오곤 합니다.
그러다 얼마 전, 제 가슴을 완전히 세차게 뒤흔든 한 기업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빅테크 기업(삼성전자, 애플, 엔비디아)들이 줄을 서서 제발 물건을 팔아달라고 애원하는 대한민국 부산의 숨은 거인,
'리노공업'의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지금은 작은 유통업을 하고 있지만, "나도 언젠가는 이분처럼 위대한 기업가가 되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을 담아, 그리고 제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곰곰이 정리해 보기 위해 이 글을 적어봅니다.
1. 비닐봉투 장사꾼, 시대의 흐름을 읽다
리노공업의 이체윤 회장은 1978년 28살의 나이에 대기업 직장을 과감히 박차고 나와 자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없던 그가 부산의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처음 시작한 것은 첨단 반도체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비닐봉투와 카메라 케이스 공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이 변할 때마다 무려 6번이나 과감하게 업종을 바꿨습니다.
현재 유통업을 하는 제 입장에서 이 대목은 정말 소름이 돋는 부분입니다. 유통 품목 하나 바꾸고, 거래처 하나 새로
뚫는 것도 사장들에게는 피가 마르는 결단입니다. 그런데 기계를 새로 사고 사람을 새로 뽑아가며 업종을 6번이나
바꿨다는 것은, 이분이 얼마나 무서운 집념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키워왔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1985년, 그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걸음마 시절에 "앞으로는 반도체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량 일본과 미국에서 수입하던 '반도체 검사 장비용 핀(Pin)' 개발에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듭니다.
2. 모르면 묻는다! 천 번의 비행기가 만든 세계 1위
비닐봉투 만들던 사람들이 정밀 반도체 부품을 만든다고 하니 주변의 비웃음은 당연했습니다. 기술도 없고 아는 것도
없던 이 회장이 선택한 무기는 단 하나, '끝까지 물어보는 힘'이었습니다.
그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10년 동안 선진국을 1,000번 넘게 드나들었습니다. 1년에 100번 가까이 비행기를 타며 외국의
전문가를 찾아가 묻고 또 물었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부지런히 물어서 배우는 것", 그것이 평범한
골목 공장을 세계 1위로 만든 열쇠였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제품이 바로 '리노핀(RENOOPIN)'입니다. 머리카락 굵기보다 가는 0.075mm의 파이프 안에 미세한
스프링을 집어넣는 독보적인 기술로, 현재 전 세계 반도체 테스트 핀 시장의 약 70%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습니다.
3. 사형 선고 같았던 위기, '나만의 해자'로 돌파하다
1996년, 리노공업은 핵심 기술 인력들이 대거 회사를 떠나고 제품 불량까지 재발하는 사형 선고 같은 위기를 맞이합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누구나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히거나, 감당하기 힘든 위기가 오기 마련입니다. 이 회장은 여기서
주저앉는 대신, 설계부터 깎고, 도금하고, 조립하는 모든 과정을 단 하나의 공장 안에서 처리하는 '일괄 처리 공정(All-in-One)' 시스템이라는 정반대의 승부수를 던집니다.
외부에 맡기지 않고 우리 안에서 다 해결하니 원가는 확 낮아졌고, 기술 유출은 막혔으며, 품질은 완벽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리노공업만의 깊은 방어선, '해자(Crater)'가 되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제품을 단 두 달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속도와 품질 덕분에, 리노공업은 경쟁사보다
가격을 20% 더 비싸게 받으면서도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하나 팔면 절반이 남는 40% 이상의 경이로운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제조업계의 구글'이 된 비결입니다.
4. 끝까지 부산을 지킨 세계적 기업
리노공업은 이제 반도체를 넘어 초음파 의료기기 부품까지 영역을 넓혔고, 다가오는 AI 시대(HBM, 온디바이스 AI)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며 에코델타시티에 2,0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신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제가 이 회사에 가장 큰 리스펙(존경)을 보내는 부분은 바로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 끝까지 부산을 지켰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인프라와 인재를 찾아 서울로 올라갈 때, 리노공업은 비닐봉투를 만들던 그 부산 땅에서 세계 1위로
우뚝 서서 지역의 일자리를 만들고 중심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는 저에게는 이 대목이 너무나 큰 위로와 자부심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도 이분처럼 되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리노공업의 50년 성공 신화를 정리하며, 제 가슴속은 뜨거운 열망과 동시에 깊은 고민으로 가득 찼습니다.
'지금 작은 유통업을 하는 나는, 이 시점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회장님의 발자취를 보며 제가 내린 답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내 사업의 '품목'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보겠습니다. 비닐봉투에서 반도체로 진화했듯, 지금 내가 다루는 유통
품목에만 갇혀있지 않고, 앞으로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피겠습니다.
둘째, 모르는 것은 자존심 버리고 묻고 또 묻겠습니다. 유통업을 하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한계 앞에서, '내 나이가 몇인데', '내가 가방끈이 어떤데' 하는 체면은 다 버리겠습니다. 이 회장님이 천 번의 비행기를 타며 물었던 것처럼, 저도 살 길을
찾기 위해 고개 숙여 배우는 사장이 되겠습니다.
셋째, 나만의 '대체 불가능한 해자'를 파겠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똑같은 유통, 가격 경쟁만 하는 장사가 아니라, 리노공업의 '일괄 공정'처럼 우리 업체가 아니면 절대 안 되는 '속도'나 '품질', '단단한 거래처와의 신뢰'라는 깊은 방어선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만들어가겠습니다.
최근 창업주 이체윤 회장님의 은퇴와 지분 매각 소식으로 시장이 시끄럽지만, 리노공업이 파놓은 50년의 시스템과 기술이라는 해자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작이 초라하다고 해서 끝까지 초라한 것은 아니다."
오늘 적은 이 기사와 제 다짐을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47년 전 부산 골목의 10평짜리 공장이 세계를 재패했듯이,
지금은 비록 작은 유통업체이지만 뚝심 있게 걷다 보면 저에게도 위대한 기적이 찾아올 거라 믿습니다.
부산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장님들, 그리고 저 자신을 가슴 깊이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