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가게를 지탱할 수 있을까? 다음 달 월세는 낼 수 있을까?"
매일 밤 영수증을 붙잡고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에게 장사는 곧 생존이자 전쟁입니다.
단돈 1,000원이라도 싸게 팔기 위해 마진을 깎고, 새벽 도매시장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피눈물 나는 무한 경쟁을
치러냅니다. 조금만 트렌드에 뒤처져도, 손님이 며칠만 뜸해도 당장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게 우리네 현실입니다.
그런데 동네 골목 어귀의 허름한 철물점은 오랜 미스터리입니다. 옆 가게들은 카페에서 편의점으로, 편의점에서 무인
가게로 1년이 멀다 하고 비명을 지르며 폐업하는데, 철물점만큼은 20년, 30년 동안 끄떡없이 자리를 지킵니다. 하루
종일 손님 한 명 없고 사장님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도 말이죠.
상식적으로 진작 망했어야 할 가게가 버티는 것을 넘어, 사장님의 표정엔 늘 여유가 넘칩니다. 매일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진짜 자영업자들에게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저 텅 빈 매장 뒤에는 어떤 불공평한 경제적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1. 유통기한과 고정비 지옥이 없는 그들만의 안전망
일반적인 소상공인 창업(요식업, 유통업 등)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매달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 압박과 자산
가치 하락(폐기) 때문입니다. 반면 철물점은 경제학적으로 완벽한 리스크 방어 구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는 '헤지(Hedge)' 자산: 요식업 사장님들은 매일 재고와 유통기한 전쟁을 벌입니다. 안 팔리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가고 그게 다 내 생돈, 내 손해입니다. 하지만 철물점의 볼트, 나사, 전선은 썩지 않습니다.
10년이 지나도 먼지만 닦으면 새 제품입니다. 오히려 물가가 오를수록 자산 가치가 뛰니, 우리에게는 '공포'인
재고가 그들에게는 '적금'이 됩니다.
○ 고정비 폭탄 피하기: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아르바이트비 무서워서 몸 쪼개가며 일하는 게 일반 자영업자입니다.
철물점은 철저히 부부나 1인 중심 운영으로 인건비를 제로화했습니다. 게다가 비싼 대로변의 권리금과 월세를 피하고 임대료 싼 골목길에 자리 잡아 손익분기점(BEP) 자체를 극단적으로 낮췄습니다.
진짜 매출은 매장이 아니라 '출장 기술 공임'에서 나옵니다. 부품 원가는 몇천 원에 불과하지만 출장 한 번에 10만~20만 원의 고마진 기술료를 받으니, 유통마진에 목숨 거는 일반 장사와는 애초에 출발선이 다릅니다. 여기까진 정당한 '현장 실력'이라 쳐도, 진짜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그다음입니다.
2. '경쟁 실종'이 만든 든든한 세금 파이프라인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님이 없으면 피가 마르는데, 저 가게는 일주일 내내 공치는 날에도 매달 정해진 돈이 월급처럼 또박또박 들어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에서 떼어 간 '국민의 세금', 그리고 그 세금을 쓰는 '연간 200조 원 규모의 공공조달 시장'에 있습니다.
정부 부처, 구청, 주민센터, 학교 같은 공공기관이 살림을 살기 위해 물건을 사고 수리를 맡기는 조달 시장에서는 경쟁을
통째로 건너뛰는 '수의계약'이라는 마법이 일어납니다.
원래는 투명하게 경쟁 입찰을 붙여 최저가를 고르는 것이 나랏돈을 쓰는 원칙입니다. 그래야 세금이 아까운 줄 알고
바르게 쓰이죠. 하지만 금액이 작은 일감은 행정 편의와 '소상공인 보호'라는 명목으로 공무원이 특정 업체를 콕 찍어 계약할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우리 눈엔 한가해 보였던 동네 철물점이 사실은 인근 주민센터, 학교, 파출소의 단골 납품처였던 겁니다. 일반 소비자는
단돈 100원도 비교하고 깎으려 들지만, 관공서는 세금으로 집행되기에 가격을 깎지도 않고 돈을 떼먹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완벽한 황금 파이프라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3.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벼랑 끝 자영업자의 박탈감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제도의 취지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경쟁 체제가 완전히 실종된 보호'가 가져온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는 매일 생존을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에게 깊은 박탈감과 무력감을 줍니다.
실제 감사원 조사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시중보다 싸게 사서 세금을 아끼라고 만든 조달청 나라장터 쇼핑몰 물건 중 상당수가 시중가보다 최소 20%에서 최대 3배(297%) 가까이 비싸게 세금으로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5,000만 원에 들여온 중국산 청소차에 도색만 새로 해서 '우수제품' 타이틀을 달아 관공서에 1억 8,000만 원에 수의계약으로 납품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 차액은 고스란히 우리가 낸 세금으로 채워졌습니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더 싸고 좋은 서비스를 고민하지 않아도 나랏돈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구조 안에서
공급자는 더 이상 혁신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결론: 시장 경제의 공정성을 묻다
한쪽에서는 내일 당장 가게 문을 열 수 있을지 밤잠을 설치며, 손님 한 명이라도 더 잡기 위해 피눈물 나는 마진 전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에서 꼬박꼬박 세금을 냅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경쟁할 필요도, 노력할 필요도 없이 세금으로 짜인 튼튼한 그물망 안에서 안락하게 여유를 부립니다. 성실하게 무한 경쟁을 버텨내는 진짜 자영업자들 입장에서 이 구조는 결코 공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동네 철물점이 망하지 않는 비밀의 이면에는 철저한 고정비 방어라는 경영 전략도 있지만, 동시에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고혈이 경쟁 없이 안전하게 흘러 들어가도록 설계된 '제도적 모순'이 맞물려 있었습니다.
취약 계층과 소상공인을 위한 보호막이 과연 누구를 위해 유효해야 하는지, 그리고 벼랑 끝에서 매일 땀 흘리는 진짜 자영업자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면 이 구조를 어떻게 투명하게 개혁해야 할지, 이제는 우리가 눈을 뜨고 냉정하게 따져 물어야 할 때입니다.